
흔히 펍지 이스포츠 최고의 명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몇몇 팀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2019 PGC 챔피언이자, 오랜 기간 펍지 이스포츠를 대표해 온 명문 팀. Gen.G Esports가 그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19년 PGC 우승 이후 Gen.G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2021년도 PGI.S 3위 수상을 끝으로, PCS ASIA 시리즈와 그동안 열린 모든 PGC를 통틀어 단 한 번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매해 여러 차례 리빌딩을 거치며 최선을 다해봤지만, 이렇다 할 만한 기록은 2025년 EWC 준우승이 전부였습니다. Gen.G에게는 확실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Gen.G가 보여준 포부는 남달랐습니다. 2023 PGC 우승 멤버였던 seoul 조기열 선수와 Salute 우제현 선수를 영입함과 동시에, Al Qadisiah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줬던 diyy Daniel Noh 노은우 선수까지 영입했습니다. 특히 seoul 선수와 Salute 선수는 대한민국 최강의 듀오였기에, 펍지 이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대적인 리빌딩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국내 대회 PWS에서는 4위에 그쳤고, PGC 진출 가능성마저 희미해졌습니다. 2026 PGS 1, 2, 5, 7, 총 4번의 파이널 탈락을 기록했고, PGS에 참가한 총 123매치에서 7치킨, 매치당 평균 3.49킬, 매치당 평균 데미지 789에 불과했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PGS에 참가한 모든 파트너 팀 가운데 최약체에 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아니나 다를까, Gen.G는 첫 번째 PGS Circuit인 Circuit 1에서 3회 연속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며 암울한 시작을 알렸습니다. 물론 Gen.G만이 아니라 대규모 리빌딩을 진행한 팀들 다수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했지만, Circuit 1에서 기록한 3회 연속 파이널 탈락은 충격에 가까운 결과였습니다.
Gen.G는 글로벌 파트너 팀 자격으로 PGS Circuit에 참가할 수 있어 PGS 포인트를 쌓기에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기존 파트너 팀들과 지역 내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올라온 팀들에 밀려 PGS 상위 8개 팀에 입성하기는커녕 최하위권에 위치하는 굴욕을 맛보기까지 했습니다. Gen.G의 역대 국제전 성적을 생각해보면 매우 아쉬운 성적표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PGS Circuit 2에서도 위기는 계속됐습니다. PGS 4에서는 최종 6위를 기록하며 반등의 서막을 여나 싶다가도, PGS 5에서는 23위를 기록하며 또다시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최악의 등락을 기록한 셈입니다. PGS 6에서는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으나 최종 순위는 13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Circuit 3에서 극적인 반등 없이는 PGC 자력 진출은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꼽은 Gen.G의 부진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팀워크를 맞출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 두 번째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개인 역량은 부족함이 없다고 봤습니다. 이미 국제전에 다수 출전한 경험과 훌륭한 커리어가 존재했기 때문이죠.
한편, 2026년 펍지 이스포츠의 첫 대회는 PGS로 시작했습니다. 2026년 1월에 많은 팀들이 새롭게 리빌딩됐고, 국내 대회가 아닌 국제 대회였기에 참가 팀들의 체급 또한 매우 높았습니다. 약 2달 동안 새로운 팀원과 함께 여러 가지 운영 방향과 서로의 성향, 정보 교환의 정밀함, 교전 시 팀플레이 수준 등을 끌어올려야 할 시기였죠.
게다가 새롭게 영입된 diyy 선수의 경우, 언어적인 측면에서 팀원들과 원활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그리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여러 대회와 스크림, 개인 방송 및 경쟁전을 통해 드러났던 부분이며, 단시간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 봤습니다. 애초에 해외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 간의 브리핑 방식도 그렇거니와, 게임 내 명칭과 지형, 은어 등을 단 몇 개월 만에 완벽하게 숙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팔각정이라고 불리는 건물을 외국에서는 Wizard Tower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이런 명칭들은 맵에 따라 수백 개에 달합니다.
이런 측면들이 누적되다 보니 브리핑 실수와 정보 공유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잦은 팀킬과 인게임 내 실수 등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겪는 동안 다른 여러 경쟁 팀들은 하나둘씩 본인들만의 커리어와 상금을 챙겨나갔습니다. Gen.G는 그저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여러 가지 고충을 겪은 이후, 드디어 PGS Circuit 3에서 Gen.G의 변화가 관측되기 시작합니다. PGS 8 종합 11위에 그치긴 했지만, 그동안 계속해서 지적돼 왔던 부분들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경기 내용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브리핑과 사전 플랜, 정교한 공략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선수들의 전체적인 포지션과 역할 순서가 교체되면서 생존 시간과 순위 점수를 획득하는 비율도 늘어나기 시작했죠.
파이널 DAY 1 MATCH 1 에란겔에서의 치킨 과정을 살펴보면, 다른 팀들이 이용할 만한 동선을 차단하고 정보를 쌓으면서 인원 유지에 주력한 뒤, 결정적인 교전에서 승리하는 패턴을 보여줬는데요. 막바지 마무리에서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젠지가 유리한 구도였지만, 서로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빠르게 의견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가끔 이런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젠지는 이 매치를 토대로 점차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합니다.
두 번째 하이라이트는 개편된 포지션이 대회에서 잘 통했다는 겁니다. 기존에 Gen.G가 무기력하게 패배했던 구도를 살펴보면, ① Salute 선수가 다른 팀을 사냥할 각을 봄 → ② 상대방의 대처가 좋거나 팀 차원의 신속한 공략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Salute 선수가 무력화됨 → ③ 도와주려던 BeaN, diyy 선수가 연이어 기절하거나 또 다른 팀의 개입이 시작됨 → ④ 마지막으로 seoul 선수가 대활약하지만 곧 패배하는 루틴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개편된 포지션과 순서를 보면, 다른 팀의 개입 각을 보거나 먼저 제압해야 하는 상황에서 seoul 선수가 전면에 나서며 상세한 전황 판단과 함께 원활하고 끈질기게 공략하는 방식으로 전환됐습니다. BeaN과 diyy 선수가 그 중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주고, 후미에서는 Salute 선수가 넓게 전장을 훑어보며 최종 판단을 도맡는 패턴으로 재미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포지션 개편을 통해 Gen.G 선수들의 전체적인 생존 시간과 순위 점수 획득 지표가 상승했습니다. PGS 6 그랜드 파이널 기준 매치당 평균 순위 점수는 1.4에 불과했던 젠지가 PGS 9 파이널에서는 3.9까지 상승했고, 팀 평균 생존 시간 또한 20분 53초에서 22분 38초로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메인 오더를 맡으면서 전반적인 폼이 다소 내려갔던 Salute 선수의 교전 지표도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팀 평균 데미지 역시 672에서 980으로 대폭 상승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Gen.G가 겪었던 모든 부진의 원인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적으로 Salute 선수는 기존 공격수 포지션에서 팀의 오더를 책임지게 되면서 신경 쓰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났고,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지 못했습니다. BeaN 선수 또한 팀의 윤활유 역할을 맡으면서 무엇보다 실수 없는 탄탄한 면모와 끈질긴 생존 능력이 필요했는데, 그 역량을 갖추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seoul 선수는 지표 면에서 언제나 최고였지만, 그것은 개인에게 국한된 부분이었습니다. 팀이 무너지기 전에 먼저 나서야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diyy 선수는 기존에 본인이 플레이해왔던 스타일 전체를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Gen.G의 강점은 이제 명확합니다. 애초에 다른 팀들을 공략하는 시나리오 자체는 좋았지만, 그것을 완성시키는 결정력과 선수들의 역할 분담이 완비되지 않았기에 그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seoul 선수와 Salute 선수가 각자의 역할에 100% 녹아들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펍지 씬에서 활약한 BeaN 선수의 생존 능력 또한 충분히 농익었습니다. 게다가 실수를 연발했던 diyy 선수마저도 PGS 9 FINAL 마지막 매치에서 팀의 우승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죠.
Salute의 구도 파악 + Seoul의 침착한 마무리
물론 지금 이 칼럼을 작성하는 와중에 diyy 선수의 계약 종료와 Team Liquid로의 이적 사실이 공개됐고(2026년 8월 25일), 새로운 팀원으로 2019 PGC 우승의 주역이었던 taemin 강태민 선수(2026년 8월 27일)를 영입하며 새로운 리빌딩을 알렸습니다. 앞서 언급한 부분에서 또다시 틈이 생길 여지는 있겠지만, Gen.G에 소속된 선수 모두가 그 문제를 메울 수 있는 경험과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마치며
994일.
2023 PGC 우승 이후 대한민국 펍지 이스포츠가 국제 무대에서 한동안 침묵했던 시간입니다. Gen.G 역시 수많은 실패와 리빌딩을 반복하며 다시 정상에 오를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선수들의 역할을 바꾸고, 서로의 플레이를 이해하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견뎌낸 끝에 마침내 하나의 팀으로 완성됐습니다. 결국 Gen.G를 다시 강팀으로 만든 것은 단 한 번의 영입이나 특별한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 실패를 견뎌낸 경험,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들의 집념이었습니다.
묵묵한 실패 끝에 결국 차지하게 된 국제대회 트로피. 펍지 이스포츠 명가 젠지는 그렇게 다시금 증명했습니다. 강팀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를 견뎌낸 끝에 완성된다는 것을. 강해지기 위해 수없이 패배했던 그들의 지난날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Gen.G를 더더욱 강인하게 만들 겁니다.
- 지수보이